강병규의 지리산이야기<3> 꽃피는 봄날은 장날이다.

Author
길섶
Date
2018-11-0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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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엔 아직도 잔설이 많이 남아 있다. 산 넘어 남쪽 섬진강변은 꽃소식이 한창 이지만 내가 사는 이곳 지리산 북쪽 골짜기는 외투를 벋어 던지기가 아직은 두렵다. 하지만, 마당 양지 바른 곳의 구절초 새싹들은 궁금한 게 뭐 그리 많은지 고개를 모두 내밀었다. 그래도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들이 가끔은 있는데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한가 보다. 실상사 경내의 매화도 이제는 꽃망울을 다 터뜨렸다. 완연한 봄의 시작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단속사지에 있던 “정당매” 지금은 고사해 볼 수 가 없는 매화이다.

식구들을 차에 싣고 섬진강가의 꽃을 보러 갔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기지개를 힘껏 켜보고 싶은 마음에 갑자기 결정을 하고 주섬주섬 채비를 했다. 해마다 이맘때는 내가 꼭 찾는 곳이 있다. 지리산을 대표하는 세 그루의 매화 “원정매” “정당매” “남명매”이다. 흔히 지리 3매로도 불리기도 한다. “원정매”는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남사 예담촌에 있다. 고려 말 문신 “원정공 하즙”의 옛집에 있는 매화로 수령이 약 610년 정도 된 고거수 이다.

오랜 세월의 탓인지 본줄기는 대부분 고사되고 곁가지들이 그나마 꽃을 피운다. “정당매”는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에 있다. 고려말 문신 통정 강회백이 유년시절 단속사에서 공부를 할 때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령이 약630년은 족히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안타깝게도 2013년경 고사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볼 수 없음을 아쉬워했는데 주위에 어린 매화나무들이 그 혈통을 이어 자라주고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남명매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 산천재 앞마당에 있다. 평생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열중한 남명 조식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매화이다. 수령은 약 440년 정도로 추정되며 빼어난 수형과 짖은 꽃향을 자랑하고 있다.


▲산수유 꽃이 활짝 핀 마을의 돌담길


▲매화가 화사한 꽃 터널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너무도 소란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축제마당이란 생각도 든다. 산수유 축제장도 그랬고 매화꽃 축제장도 그렇다. 곧 펼쳐질 쌍계사 주변의 벚꽃 축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각설이패 공연을 바라보며 엿 한 봉지를 사들고 흐믓해 하던 내 늙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려보면 이 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보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요즘은 많은 곳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축제가 기획된다. 흥겨움도 중요하지만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는 감동도 줄 수 있는 잔치마당 이라면 지리산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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