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규의 지리산이야기<5> 시집, 장가 가려면 지리산으로 와라

Author
길섶
Date
2018-11-08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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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행을 종종했던 여자 후배에게서 수년 만에 연락이 왔다. 결혼한다는 소식 이후 잊고 살아왔는데, 인터넷 매체를 통해 우연히 나의 소식을 접했다 한다. 젊은 날 철없이 시작한 사업에 크게 실패를 하며 가정을 잃고 십수년 일과 지리산 사진 작업에만 몰입해 있던 시절 “나에게도 행복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게 했던 후배이다. 반가웠다. 예쁜 딸도 낳고 무탈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너무도 힘든 시절이어서 좋은 인연으로 키워 보자는 말도 못하고 끝난 관계여서 인지 잘 살고 있다는 말이 왠지 조금은 씁쓸하게 들렸다.

딸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지리산둘레길도 걸어볼 겸 내가 사는 곳을 한번 다녀가고 싶다 했다. 얼떨결에 그러라 했고, 꽃이 화사하게 핀 봄날 후배가 왔다. 왠지 좀 어색했다.


▲지리산둘레길을 찾은 젊은 여행객들의 흥겨운 파티

산중에 흙으로 뚝딱 지은 초라한 갤러리 이지만 지리산 둘레길 개통 덕에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시커먼 남자 혼자 꾸려가는 살림이라 특별한 건 없고 평소처럼 마당 가운데 모닥불을 폈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삼겹살을 구우며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별로 재미는 없었다.

열심히 고기 굽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후배와 함께온 직장선배가 삼겹살 한 점을 당귀에 싸서 입에 넣어준다. 어색함에 어정쩡한 자세로 받아 먹으며 그녀를 보았는데 너무도 인상이 좋았다. 사십을 넘은 나이였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이었고 키는 작지만 보기 드문 미인형 이었다. 후배가 다녀가고 며칠후 한통의 메일이 왔다. 선배 언니를 바라보는 내 눈에 좋은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았다며 연락처를 알려 주겠다는 내용이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그러라” 했다. 그렇게 후배의 선배언니와 한동안 문자와 메일을 주고 받았다. 너무도 좋았다.


▲흙으로 지은 갤러리 주변으로 구절초가 꽃을 피운다.

나는 어려서부터 왼쪽 귀에 중이염이 있었다. 가끔 무리를 하면 재발하곤 했는데 고된 일과 음주로 염증이 심해져 고막에 손상이 온 지경이 되었다. 수술이 불가피 하다는 진단을 받고 그녀가 사는 부산의 한 대학병원을 예약했다. 여인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얄팍한 연애의 기술을 걸어보자는 의도도 조금은 있었다. 다행히 기술이 어느정도 먹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조금씩 부담스러워 했다.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지기도 했다. 뭐하나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도 없는 내 처지를 보면 이해도 가는 상황이라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의 괴로움과 지독한 외로움에 술을 한잔 했다. 취기가 오르자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래선 안됐지만 술김에 오래전 인연이 있었던 다른 여자와도 문자를 주고받았다. 술이 웬수다. 어느 순간 느낌이 이상해 직전의 발신 메시지를 확인해 봤다. 술이 확 깨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문자의 번지수가 잘못 됐다. 다른 곳에 보낼 문자를 그녀에게 보내고 말았다. 새벽까지 잠을 한 숨도 못 잤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생각에 너무도 절망적이었다. 어차피 끝난 거지만 “정말 좋아 한다”는 말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다.

새벽 동이 트자마자 부산으로 향했다. “설마 만나줄까?” 그러나 그녀가 나왔다. 솔직히 이야기하고 미안하다 했다.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고 끝내면 내가 죽을 때 크게 후회 할 것 같아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이야기 했다. “술 먹으면 그럴 수도 있지요.” 나는 그날 지리산까지 훨훨 날아왔다.


▲어느 여름날 아침 갤러리 뜰에서 아내와 커피를 한잔 했다.

어느 날 그녀가 지리산에 와서 서럽게 울었다. 산골짜기로 시집가는 것을 죽어라 반대 하시는 엄마를 도저히 져버릴 수 가 없다 한다. 나도 나를 원망하며 한참을 같이 울었다. 체념과 고통의 시간들이 꽤 흘러갔다. 아무리 내 가슴에서 그녀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어느 가을이 깊어가던 날 아침 마당에 핀 구절초 꽃 한 아름을 꺽어 오토바이 적재함에 싣고 부산을 향했다. 무작정 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 앞에서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없다. 점심식사 시간이 다 가도록 답장이 없다.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사무실로 올라갔다. 동료로 보이는 여자분께 그녀를 불러 줄 것을 청했다. 덥수룩한 수염과 너저분한 차림이 의아 했는지 대답도 없이 사무실로 사라진다. 잠시 후 그녀가 나왔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냥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가관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나를 조그마한 회의실로 이끌었다. 잠시 진정을 하고 왜 문자에 답을 안했냐고 물었다. 그녀는 문자를 받지 못 했다 한다. 나에게서 그녀를 지우기 위해 전화기에 있는 모든 연락처를 없애 버렸었다.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문자를 했던 것인데 가운데 번호 하나가 틀렸다. 한참을 울다가 웃었다. 그녀에게 구절초 꽃 한 아름을 안겨주고 지리산으로 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우리는 실상사 앞마당에서 큰스님의 주례로 혼례를 올렸다. 내게 그런 용기와 배짱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내 아내가 라식수술만 안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한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었을 법한 이야기 이다.

나는 예전엔 결코 그럴 수 없었지만 지리산에 살며 똥배짱만 늘어 난 듯하다.
지리산에는 많은 노처녀, 노총각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내려온다. 신기한 것은 그들이 또 서로의 짝을 찾아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다. 한창일 때 도시에서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의외로 이 산골짜기에서 많이들 결실을 맺곤 한다. 아마도 눈높이가 달라진 탓일 것이다. 도시에서 바라본 남자의 최고 가치는 외모와 능력이었을 것이고 여자의 가치는 예쁜 얼굴과 세련된 외모이었을 것이다.

지리산에서야 비로소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된다. 자신도 진솔하게 돌아본다. 자연 속에서의 삶을 함께 꾸려가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그간 추구했던 가치가 허구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저 상대에게 의지하고 덕 보기를 바라기보다 함께 해야 살 수 있는 것이 시골의 삶이기에 서로의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것 같다. 가면을 벗으면 연애가 된다. 삶의 고뇌도 훨씬 줄어든다. 지리산에서 산다는 건 못난 나에게는 큰 축복인 것 같다. 친구들도 그렇다고 이야기 한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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