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규의 지리산이야기<9> 지리산에서도 부부싸움은 한다.

Author
길섶
Date
2018-11-08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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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잠시 외출을 했는데 갑자기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원하면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겠다는 내용이다. 시골에서의 삶을 아직은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너무 짜증난 표정 짓지 마라고 투덜거린 적이 사실 여러 번 있었고, 연휴기간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 꽤 힘들어 하는 눈치여서 미안했는데 드디어 폭발했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그런데 내용이 좀 이상해서 서둘러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내는 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말하며 다른 여자가 좋으면 좋은사람 찾아 가란다. 뒤통수를 무언가에 맞은 듯 멍해지며 앞이 캄캄해 졌다.


▲ 어느 봄날 춘향의 고장 남원의 요천 변에서 만난 젊은 연인들

며칠전 아이 사진을 확인해 보려고 우연히 내 휴대폰을 보던 중 문자내용을 보게 됐는데 다른 여자와 야심한 시각 통신한 사실을 확인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그랬고 이번에는 대화내용을 삭제하는 증거인멸의 치밀함까지 보였으니 실제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럴 의도가 확실하기에 도저히 용서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할 말이 없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확실한 물증을 잡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기에 잘못 했다고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싹싹 빌기는 했지만 쉽게 넘어갈 눈치는 아니었다.


▲ 한곳을 바라보는 지리산 일출봉의 두 그루 나무는 부부를 닮았다.

나는 일과를 마치고 혼자서 맥주를 한잔씩 하는 시간을 종종 즐긴다. 하루 있었던 일도 되짚어 보고 이런저런 잡생각과 함께 상상속의 다양한 그림들도 그려 본다. 현실에서 꼬이고 꼬인 실타래도 알콜 기운의 도움도 받으며 오랜 시간 생각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밤이 깊어지거나 비라도 내리면 맥주와 함께 하는 잡생각의 영역은 추억의 세계로 향한다. 어린 시절 시골 고향마을에서 수박 서리하다 주인에게 들켰던 기억,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선생님들 눈을 피해 여관 담장을 넘어 막걸리 몇 병 몰래 사들고 들어와 이불 뒤집어쓰고 한잔씩 나누며 재잘대다 선생님께 걸려 혼줄 났던 기억, 말 한번 못 붙여 봤던 고교시절 귀엽고 예쁘게 생겼던 그녀와 첫 짝사랑의 설레임과 같은 추억들이 문득 문득 떠오른다. 그러다 술기운이 절정에 이르면 전화기의 주소록을 뒤지기 시작하고 그 시절 추억의 주인공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어디서 무탈하게 살고는 있는지 이리 저리 문자를 날려 본다. 이게 나의 오랜 술버릇이다. 친하게 지내는 어떤 의사는 이것도 일종의 “주사”란다.


▲ 어느 봄날 지리산 뱀사골의 화사한 꽃은 행복한 삶의 모습

이 술버릇이 늘 건전하지 만은 않은 것에 문제가 있었다. 야심한 시각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에게 문자를 보냈다면 어느 누구도 일탈의 흑심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특별한 관계가 아닌 옛 산행친구와의 문자통신 이었지만 아내에게 싹싹 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일탈의 흑심이 전혀 없었다고 변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일탈의 욕망이 삐죽삐죽 고개를 드는 것이 나에게만 있는 일일까?. 영화 속의 로맨스를 흉내 낼 여유도, 용기도 내겐 없지만 마음속 깊이에서 술기운을 타고 가끔씩 슬그머니 끓어오르는 감정은 어쩔 수 가 없다. 아내의 말로는 그것이 나의 바람기 때문이란다. 정말 나만 그런 것일까?. 억울한 면도 없지 않지만 현행범으로 마음을 들킨 이상 할 말은 없다. 지리산에서 밤늦게 혼자 술을 먹을 일이 있으면 전화기는 멀리 치워놓는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아내들에게도 부탁한다. 남편들이 야심한 시각 혼자 술을 먹는 일이 없도록 잘 보살펴주는 일도 부부싸움 예방에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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