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규의 지리산이야기<17> 내 마음의 고향 지리산 반야봉

Author
길섶
Date
2018-11-08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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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지리산 주능선의 한가운데 사람의 엉덩이 형상으로 우뚝 선 반야봉은 높이 1,732m의 신비로운 자태의 아름다운 봉우리다. 불가에서 반야는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반야봉이 있기에 이곳에 오면 이치를 깨닫는다 하여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는지도 모른다.


▲지리산 반야봉을 휘감아 돌아 흐르는 운해

남쪽으로는 피아골 계곡을 북동쪽으로는 뱀사골 계곡을 끼고 있는 반야봉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독특한 가치들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우선은 웅장한 자태가 일품이다. 지리산 어디에서 보아도 반야봉의 늠름한 모습은 매력적이고 온화한 곡선미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지리산 반야봉은 흙산이다. 비옥한 토질로 고산지에 자생하는 진귀한 동식물들은 모두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에서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따뜻한 반야의 품은 세상 모든 것들의 어머니이다.


▲어느 가을날 반야봉에서 아침을 맞으며

반야봉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뱀사골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피아골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고 노고단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이 있다. 성삼재에 주차장이 설치되면서 부터는 대부분 노고단에서 주능선을 따라 걷는 등산길을 많이 이용한다. 거리도 짧고 능선길이라서 오르막이 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야봉까지의 능선길은 참으로 아름답다. 북으로는 멀리 덕유산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섬진강의 굽이쳐 흐름을 느끼며 걷는다. 겨울에는 나뭇가지에 부딛친 눈보라로 하얀 눈꽃길이 되고 봄이면 진달래, 철쭉으로 붉은 꽃길이 된다. 여름철 운무라도 몰려들면 몽환적인 꿈속의 산책길이 되어 사색과 낭만을 경험하기도 한다.


▲반야봉에서의 겨울아침

지리산 기슭에 살면서도 반야봉에서의 추억을 종종 떠올린다. 영하30도를 밑도는 한겨울 허름한 천막 안에서 침낭 하나를 의지하고 촬영을 위해 아침 일출을 기다리던 기억과 장대비를 피해 몸을 웅크리고 구름이 걷히기를 몇날 몇일을 기다리던 기억들은 심하게 게을러진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함께 산사진을 오랫동안 해온 익산의 박균철 형님과 이곳에서 깊은 밤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면 반야봉 위로 손에 잡힐 듯 떠있던 무수히 많은 별들 중 몇몇은 빛줄기를 이루며 떨어져 사라지곤 했다. 지리산 반야봉에선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몇몇은 지금도 인연이 이어져 반야의 추억으로 종종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길에서 우연히 반가운 산꾼이라도 만나면 으레껏 건네는 인사말이 “우리 반야봉에서 하루 밤 잘까요?”였다. 지금은 경험할 수 없는 옛추억이다. 인근 뱀사골 계곡 끝자락에 있던 대피소가 없어지고 국립공원 내에서의 야간산행 통제가 심해지면서 부터는 반야봉에서의 밤을 경험할 수가 없다.


▲ 지리산 반야봉 묘향대의 모습

반야봉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비슷한 높이의 남쪽 봉우리가 주봉이고 북쪽 봉우리를 중봉이라 한다. 중봉 정상에는 큰 묘가 2기 있다. 이곳에 잠든 고인이 얼마나 지리산 반야봉을 좋아했으면 죽어서도 이곳에 묻혀있을까 하는 생각과 부귀영화를 위해 자손들이 조상을 이 높은 산정에 모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여간 이분들은 산에서 비박을 할 수 있었던 시절 산꾼들의 든든한 지킴이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소주 한잔 따라놓고 꾸뻑 절하고 잠을 청하면 참으로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방송매체에서 지리산의 특별한 곳을 소개해 달라하면 나는 묘향대를 소개한다. 반야봉 정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깊은 산중의 조그만 암자이다. 중봉에서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가는 방향으로도 접근할 수 있지만 출입이 금지된 등산길이고, 지리산 주능선 길에서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을 향해 가다 보면 또 다른 반야봉을 향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오솔길이 나있다.

이 길을 따라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가면 묘향대를 만난다. 바위 벼랑밑 양지바른 곳에 달랑 집 한 채가 지리 잡고 있는데 폭풍 한설에도 바람 한점 들지 않는 신비로운 곳이다. 산중의 삶을 오롯이 지켜가며 자리하고 있는 묘향대는 속세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다.

젊은 시절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뛰어가다 반야봉에 올라서야 비로소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던 기억들, 양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던 반야의 밤하늘, 소주잔 기울이며 산꾼들과 나누던 산정에서의 정담들은 한동안 습관처럼 내 발길을 반야로 끌어들이곤 했다. 지금도 배낭 한켠에 소주 한 병 찔러 넣고 가끔 내 몸을 온전히 맏기고 싶은 곳 지리산 반야봉은 나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글/사진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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